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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The Moment

Gallery Aso, Daegu, 2017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Ink on linen, 4 pieces, per 91x91cm, 2017

 

The Moment - 선으로 긋는 순간들

 

-나의 작업, 1 초 수묵에 대하여

 

 

삼 년 만에 이 장소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참 특별한 인연이다. 지난 번 전시 중에 문득, 기회가 되면 이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에 있으면 햇빛과 물, 바람과 콘크리트 그늘에 담겨진 공기의 흐름과 결들이 만드는 기운이 내게 들어와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개옻나무와 마디풀 분재의 단정한 선들이 갓 태어난 나의 ‘1 초 수묵’ 필획 옆에서 지긋이 서 있다. 오십 중반의 나이, 삼십 년이 넘게 그리고 그어온 시간이 담긴 순간의 격한 필흔들 사이로 은근하게 들어와 같이 호흡하며 공간을 오롯이 조율한다. 가만히 구석에 앉아 열려진 공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과학자들은 우리가 보는 물체의 색은 본래의 색이 아니라고 한다. 각 물체가 빛을 흡수하여 반사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자체의 색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지 않아서 색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블랙 바디(Black body)’라고 불리는 완벽하게 타버린 재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태우면 온도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수묵화에서 모든 색을 함축한 먹색 하나로 사계절의 다양한 색과 풍정을 담아낸 동양의 우주관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대목이다. 다 타버린 재가 다시 불타서 온갖 색으로 변화하는 이 ‘재의 부활’은 화가의 손에 의해 다시 생명으로 태어나는 순환의 과정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만나는 잠시 동안의 기억을 간직하려는 이 본능적인 행위는 몸으로 실현된다. 대상을 재현하려는 몸에 배인 표현 관습을 떨쳐내고자 ‘1 초’라는-어쩌면 누군가에겐 엄청나게 긴 영겁의 시간일지도 모르는- 분절된 시공간의 밀도 안으로 들어가 오히려 긴 찰나에 머물고자하는 행위를 통해 나는 과연 무엇을 만나는가?

 

행위는 과정으로 지나가고 흔적은 결과로 남겨진다. 이것은 의도적인 표현이 매우 힘든 ‘1 초’라는 시간적 한계상황을 통해 무위적 행위를 실현해보려는, 다분히 모순되며 인위적으로 의도된 역설적 장치이기도하다. 여기에서 나는 비의도적 행위의 결과가 도리어 기존의 의도적 행위의 성과를 뛰어넘는 것을 발견하면서 매순간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경우의 공간적 변수들을 만난다. 이 비의도적 결과의 생경함은 이미 과정 속에 내포된 필연이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의 이치가 삶의 이치와 서로 통하지만 기다림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호흡을 그린다. 왜냐하면 호흡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먹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람이 ‘휙~’ 지나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아소갤러리 개인전 중에, 2017. 6. 28. 임 현락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Ink on linen, 2 pieces, per 91x91cm, 2017

 

 

수묵의 붓길에 실린 카이로스(Kairos)의 시‧공간

 

- 임현락의 일초(一秒) 수묵

 

 

여름 한가운데 아소에서 임현락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 작가가 아소 공간에 또 한 획을 그려 넣었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한 시인은 물리적이고 수평적인 시간(크로노스 Chronos)과는 다른 차원의 정신적‧수직적인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명명한 바 있다. 미적체험의 순간이나 완상‧직관의 순간처럼 문득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신이 집주(集注)되고 수직적으로 지펴 오르는 시간을 일컫는다. ‘일초 수묵’, 혹은 ‘순간에 머물다’라는 전시 타이틀이 예시하는 것처럼, 이 작가는 줄곧 수묵의 한 획이 품고 있는 잠세태를 즉발적인 신체행위로 풀어냄으로써 정신과 붓길, 그리고 우주 대자연의 기운을 일체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번 아소갤러리의 전시(2017. 6.20 - 7.22) 역시 이 같은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알고 보면 일초도 너무 긴 시간이다. 찰나가 0.1초의 마이너스 24승 정도라는 시간개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무심코 한 호흡 안에 품고 뱉을 수 있는 우주의 기운은 광대하고도 깊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묵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흔적들을 가장 최소의 호흡으로 품어내면서 보는 이들을 흔들리게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전율이라기보다 역시 ‘존재의 흔들림’이다.

 

이헌재 선생의 작품인 아소갤러리는 공간의 닫힘과 열림을 용의주도하게 운용한 아주 미니멀한 누드콘크리트 건축물인데, 바람과 햇빛, 하늘, 그리고 넓은 수조의 물까지 끌어들여 대자연의 소통이 남다른 데가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 수묵화 열 네 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상향 획과 하향 획의 50호 두 점이 한 벽면에 설치되어 에네르기의 긴장과 확장에 있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수조에 비치는 맞은편 벽면에는 묵획이 품을 수 있는 점‧선‧면의 밀도와 운동감이 집약된 50호 네 점이 시‧공간을 시방세계로 확장하며 걸려 있다. 나머지 한 쪽 벽에는 6호의 화포에 바람결과 들풀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일곱 점의 작품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복도같이 좁고 어두운 공간을 열고 나아가려는 듯이 90도로 꺾인 한 획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 같은 공간적 배치 역시 매우 민감하여, 보는 이에 따라서는 사면의 벽에 마치 네 덩어리의 작품이 서로 밀고 당기며 확장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시간적으로는 긴장과 이완의 한 호흡 속에 우주의 기운이 모두 흡수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을 만큼, 작품 배열의 치진포세(緻陳布勢)가 마치 한 화폭 속에서 일어난 것처럼 포치되어 있다. 오래 전 같은 장소에서의 전시에서는 야트막한 수조 속, 투명한 PET에 한 획을 길게 끌어올려 하늘을 향해 설치한 ‘호흡 – 1 초’도 선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입체적인 그런 작업이 없이, 면천 캔버스에 수묵으로 그어진 획들이 그대로 물의 표면에 반사되어 깊이 있게 연출된다. 설치미술이 공간의 확장 개념이라고 한다면, 이번엔 평면 수묵화 열네 점만으로 갤러리 공간의 확장과 심화를 도모한다. 특히 나무와 꽃 전문가인 갤러리 관장의 감각이 더하여져 이끼 낀 수조 옆의 속새(마디풀)와 안쪽 공간의 겸양옻나무 선들이 수묵의 점획과 어우러지면서 예술과 자연이 하나로 조화되는 흐름을 감지케 한다.

 

감상하는 동안 수조에 빗방울이 떨어져 점점이 퍼져가는 물이랑 사이로 묵흔의 자취가 흔들리고 흩어지는 정경을 음미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번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작품형성의 ‘두 가지 본질관계’에 대하여 일찍이 하이데거는 “영원히 비대상적인 하나의 ‘세계’(Welt)가 작품 가운데 건립되어, ‘나타나면서-감추는’ '대지'(Erde, physis)에 귀속된다”고 설파한 적이 있다. 나아가 작품이 자기 스스로를 대지와 자연으로 되돌려 내세우고 이끌어내는 일이 바로 작품을 형성시키는 것이며, “예술의 본질은 존재자의 진리가 작품 속에서 스스로를 정립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동양의 전통매체인 수묵 작업을 음미하면서 하이데거의 예술본질론과 작품형성론을 떠올리게 된 점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모든 색과 만물의 근원, 그리고 태현(太玄)의 우주기운까지를 스스로 품고 있는 수묵의 경계는 작가가 매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지 위에 하나의 세계를 일으켜 세우고, 또한 존재자의 진리를 개시하며 작품을 형성시켜 간다.

 

임현락의 모든 작품들은 작가자신도 특별한 마무리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진행형의 ‘형성’ 속에 있다. 그동안 작가는 국악과의 콜라보를 통해 즉흥적인 운필 설치작업을 한 적도 있고, 낙동강변에 광목천을 수 십 미터 깔아 놓고 그 위에 일 획을 치며 끌고 가 강물 속에 담금으로써 먹과 영혼을 함께 물속에 풀어낸 적도 있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초청된 전시에서는 펠레스트리나의 긴 방파제 위에서 한 획을 풀어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에 닿게 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퍼포먼스를 돌아보더라도 작가의 지향점은 수묵을 매개로 하여 일종의 근원형상(Ur-Bild)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다분히 직관적인 사유를 풀어놓는 데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속 필획들은 나무나 풀 등을 상형했다기 보다는 생성을 품고 있으면서 늘 우주적 과정 속에 있는 존재자의 진리를 개시(開始)하는 데로 향해 있다고 할 만하다. 2차원의 평면 작업에서도 필획들은 상하 좌우로 확산하면서 공간을 확장하고 있으며, 한 묵점들이 농묵과 담묵, 파묵, 발묵, 갈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필흔을 품고 생성, 소멸의 순환구조를 보여준다. 이 번 전시에서 수조 속에 비치는 획들이 물의 미세한 결에 따라 흔들리며 부서지는 모습까지 고려했던 점도 작가의 예술의지와 부합된다. ‘진리의 개시’라고 하지만, 그 진리 자체가 끝내 불가지적(不可知的)이고 불확정적인 한, 실로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의 흔적과 그 과정들을 ‘힐끗’ 암시할 수밖에 없다.

 

동양의 전통 화론 속에는 무묵구염(無墨求染)이라는 말이 있다. 먹이 없는 곳에서 색을 구한다는 뜻인데, 사의화(寫意畵)의 여백사상에서 나아가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철리(哲理)로도 읽히는 측면이 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최소한의 묵필흔적들만 보여주고 많은 것들을 건드리지 않고 남겨두고 있지만, 오히려 많은 말들을 함축하고 있으며, 수묵을 통해 부단한 생성 소멸의 순환 속에 있는 대자연의 순리와 미완(未完)의 삶, 미결(未結)의 예술이 품고 있는 비밀과 암호를 얼핏 엿보게 하는 단서를 던져준다. 또한 한 순간에 머무는 몸의 긴장과 이완이 결국 영혼의 긴장과 이완에 맞닿아 있으며 찰나의 편린들이 궁극의 영원과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네트워크 속에 이 작가는 ‘그림 이전의 그림’, 즉 원형상의 경지를 문득 떠올려 보여주면서도, 또 한편 그리는 행위 ‘이후의 그림’을 하고 있다고도 할 만하다. 역시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서 오히려 그림을 얻었다”(당대 장언원의 <역대명화기> 속 오도자 그림에 대한 품평에서).

 

-장미진(미술평론가)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Wild herbs / 들풀, Ink on linen, 7 pieces, per 41x32cm, 2017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Ink on linen, 100x65cm, 2017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Ink on linen, 100x65cm, 2017

 

Regarding Lim Hyun Lak’s work, we are struck by his ardent gestures that confront fathomless transparencies to reveal the majesty of the paintings in which quite diaphanous liquids blend with the strictest of brushstrokes. Basically limited to black and white, the works adopt various formats unfolding series upon series, and are further articulated by his performances on the sidelines.

 

With Lim Hyun Lak there is no representation. Quite the opposite, the modeling is stripped of any figuration. For each work, the artist seamlessly weaves in patterns that shape the would-be gaps between the lines so that they share their material substance – the paint itself. His paintings repeat over and over a shape evoking the infinite within a boundless space/time continuum. His latest work is still his first as for with each one, all must begin again whether it be the icon, ideogram or sign or even choice of material.

 

Although he played with some rather ochre and yellowish accents, albeit sparsely, in his earliest works, Lim Hyun Lak now favors going back to a particular nuance of black - made from mixing various hues of ink – against a neutral background of off-white sometimes strengthened by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His designs articulate around the boundaries of light.  The black (absolutely absorbing) and the white (absolutely refracting luminosity) form blind spots, which play with the viewer’s regard either by swallowing it up or making it dazzle.  Black becomes the conclusive referent of what is and what is not, or rather, what cannot be perceived, or even demiurgeous energy transmitted. In any case, it is never neutral for the artist since Lim Hyun Lak’s work rejects blackness being inert matter. In the same way as Matisse, who re-dedicated color, Lim re-dedicates the living materiality of each layer of ink, with its vibrant density, whose variations in thickness inject a range of values and nuances that sometimes almost appear to be flocked. On the other hand, the pure white background offers glowing, spacious emptiness. 

 

Along with this working of material and hue, the artist adds an element of rapidity in execution. Each slashing stroke is drawn with one breath, thereby curtailing the duration. Such brevity brings a particular depth to the painting which, in turn, draws us in. Lim Hyun Lak explores every possible medium in order to be as faithful as possible to his idea. His means are many:  acrylics, tempura, Chinese ink, etc. His formats get bigger. As the surfaces buckle and unbuckle the pictorial space weaves a thousand oscillations, both slow and rapid. The works become “paths”, “instants”, “tears”. Swept away by the force of movement, they approach us from an almost inaccessible faraway interior to bring us back to peer into the depths of an abyss. Somewhere between drifting and dangling, between present and absent, the works strengthen to create an autonomous language made of signs, waves and vibrations where the movement alone prevails. Right-side-out or inside-out, such differences fade. Lim Huyklan’s work is vast - infinitely so, inspired by a very precise idea of what all creation should suggest.

 

His painting evokes a conception of the universe (probably taken in part from that of Buddhism and Taoism) as does traditional Korean painting, where matter and light are interchangeable since both are simply energy, animated by dazzling, vigorous gestures without beginning or end yet following a series of stages. What is at play is the very essence of painting. And, through the dynamics of his art, Lin’s painting releases a force, almost an electric current, a living vibration mixing matter, like particles moving in the light. And, added to this is an exalted beauty, based on the need to elucidate, perhaps, our presence on earth, to produce meaning even if this sense vanishes – and this is where the incommensurable quality of the work lies –the moment we think we have pinned it down within a form.

 

We must know how to look with modesty and restraint or, rather, anew at the whole of his work. He describes things existing in their non-existence, beyond all probability, as simply the pure qualities of an artistic journey that has been going on for decades based on reflection. And, when we penetrate the works, there is a strange quietude that seizes us. This shows that the indisputable logic of his artistic design opens for us the need for a return to silence where a sign as delicate as a fleeting shadow regains its empowerment over an object.

 

-Françoise Docquiert / Art Critic, Assistant Director Department of Plastic Arts and Sciences Art University Paris 1 Pantheon Sorbonne.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임현락의 작품을 보는 것은 장엄한 창작 행위에 다가가는 일이다. 거기에선 거친 몸짓이 그림의 측정할 길 없는 투명성과 경쟁하고 있고, 너무도 반투명한 유동성이 가장 권위적인 흔적과 뒤섞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원칙적으로 흰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지며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있고, 일련의 시리즈를 갖추기도 하면서 때로는 퍼포먼스를 통해 연출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는 어떠한 재현도 없다. 오히려 모든 작품에는 형상이 제거되어 있다. 각 작품마다 그는 질료의 빈틈이 없는 완성을 거치면서 공간들 사이를 분할하는 선들을 짜 넣는다. 그의 그림들은 그 자체로 영원한 시공 속에서 드러나는 어떤 무한한 형상의 반복들이다. 마지막 작품은 여전히 첫 작품이고, 또한 각 작품들에서 도상, 표의문자, 기호, 소재, 이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한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비록 드물긴 하지만 약간의 황토 빛과 노르스름한 색조를 강조하여 그렸다면, 최근 임현락은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물감을 섞어서 얻어낸 매우 특이한 색조를 지닌 검은 색과, 한국의 전통적인 종이인 한지를 사용하여 두드러지는 흰색,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윤기가 없는 황백색 계열인 블랑카세(blanc cassé)의 중립성으로 복귀하고 있다. 그의 형상들은 빛의 경계를 돌며 명확하게 드러난다. 절대적인 수용으로서 검은색과 절대적인 굴절로서 흰색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형성되어 관객의 시선을 삼키거나 눈부신 황홀함으로 이끈다. 형상으로 표현된 검정은 그것이 무엇이거나 혹은 아니거나, 조금은 그런 듯한 것이거나, 감지할 수 없는 것이거나 혹은 차라리 조물주의 에너지로 전도된 것일지라도 결정적인 지시대상인 관계항이 된다. 어쨌든 작가에게 이 색은 그의 작품에서 비활성화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마티스가 색을 주장한 것처럼, 임현락은 선명한 밀도를 지닌 두께의 층이 지닌 생생한 마티에르(matière)가 있는 검정 잉크에 전념한다. 그 두께의 다양한 변화는 대부분 한 쪽으로 몰려서 다양한 가치와 뉘앙스를 만들어 낸다. 다른 한 편, 순백의 배경은 빛나고 진동하며 광활한 공허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임현락의 작업은 검정의 무기력한 질료성에 반박하듯이 순수한 빛의 관념성도 거부한다.

 

질료와 색조에 대한 이러한 작업에 작가는 붓질의 빠른 속도감을 덧붙인다. 그는 호흡의 인도를 받아 단호한 몸짓으로 시간을 축약한다. 간결함의 섬광이 화폭에 우리를 거의 흡입할 듯한 매우 특별한 깊이를 준다. 자신을 이끄는 생각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기 위하여 임현락은 모든 가능성의 영역을 탐색한다. 수단은 아크릴, 안료, 먹 등 다양하다. 그림 크기는 커져가고 있다. 화폭의 공간이 전개되면서 수천 개의 느리거나 빠른 진동이 조밀하게 짜인다. 작품들은 '여정', '순간', '추출' 이 되어간다. 행위와 호흡, 그 순간적인 힘에 의해 제작된 작품들에서 우리는 공백의 깊이를 보기에 이르고, 거의 접근하기 힘든 내면의 먼 곳까지 다가간다. 부차적인 것과 두드러진 것 사이에서, 중앙과 부재 사이에서, 기호와 곡선과 떨림으로 만들어진 자율적인 언어, 그러나 움직임만이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는 그런 언어를 창조하고자 하는 노력을 화폭에서 읽는다. 외부와 내면, 또한 차이들이 사라진다. 모든 창조 행위가 암암리에 제시해야 할 것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생각을 토대로 하는 임현락의 작업은 무한히 광대하다.

그의 그림 작업은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불교와 전통적인 한국화의 실제에서 가져왔을 세상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강하고 전격적인 몸짓에 의해 지탱되는 물질과 빛은 연속적인 상태들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어떤 동일한 에너지이다. 이렇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그의 그림 작업의 관건이다. 우리의 공간과 공간 인식의 형상이자 언어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작품 행위의 역학 체계를 거쳐 어떤 힘, 흐름이라 말할 수 있는 것, 빛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 같은 물질을 섞고 있는 생생한 진동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우리의 현존을 해명하고 거기서 의미를 생산할 필요성에 기초한 – 비록 이 의미가 형태 속에 담아두었다고 우리가 믿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하더라도, 게다가 그림 작업의 측량할 길 없는 질적 가치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데 - 열광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조심스럽게 또 신중하게, 아니 차라리 소박하게 그의 작업 전체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의 작업은 수 십 년간의 긴 상념과 성찰을 근거로 진행된 순수한 예술적 여정으로서 사물의 존재를, 사실성에 근거한 틀에서 벗어나, 비존재 속에서 형상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 들어가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이상한 어떤 정적이다. 이 정적은 우리를 향해, 어김없는 조형적 논리를 지나서 곧 사라지고 마는 그림자와 같은 기호가 대상에 대한 그의 권리를 온전하게 되찾는 그러한 침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을 열어놓는다.

 

-Françoise Docquiert  / 전시기획 및 평론, 팡테온 소르본느 파리 1 대학 부학장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The Moment / 1 초 수묵 (A stroke, Duration: ‘1 second’), gallery Aso, 2017

 

© 2022 by Lim Hyun L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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