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 수묵 A stroke(duration: 1sec.), Art Factory Seoul, Seoul (2013)

 

 

'1 초', 순간에서 영원으로

 

임현락의 〈1 초 수묵〉에서 1 초는 찰나와 영원이 합류하는 시간과 공간의 특별한 짜임이다. 그는 끊임없이 그 곳으로 되돌아가서 창조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 1 초는 수묵의 본질인 생명의 기운을 화폭 위로 뿜어내기 직전, 집중과 긴장으로 일순간 화석이 되어버린 시간의 멈춤, 즉 순간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 멈춤 안에서 시간은 더 이상 쪼갤 수도, 더 이상 늘일 수도 없는, 오로지 작가만이 포착할 수 있는 영원 같은 한 순간으로 변모한다.

 

〈1 초 수묵〉은 대구에서 재작년에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무심한 듯 휙휙 획을 그은 길고 가느다란 투명 페트를 전시장 바닥에 촘촘히 심는 데서 시작됐다. 천정에서 길게 늘어뜨려 마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모양으로 작가는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한줄기 빛에도 미세하게 반응하는 '수묵생명체'를 만들었다. 바로 앞선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화면 속 들풀의 하늘거림을 공간에서 구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삭막한 도심의 시멘트 바닥 틈 사이로 싹을 틔우고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이름 모를 들풀을 발견하는 순간, 작가는 생명을 향한 한없는 감동으로 온 몸이 짜릿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삼라만상에 대한 애린(愛隣)을 다시 발견하고 생명을 노래하게 된 순간이다. 임현락은 화단에서 그를 주목하게 만든 '나무들 서다' 연작에서 1 획의 기개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2000년, 갓 마흔의 나이에 겪은 대장암 수술과 긴 치료의 시간을 의연히 이겨내면서 탄생한 이 작품은 그의 삶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분주한 사회생활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쫒기다 보니 이 소중한 체험을 망각하며 살다가 들풀의 생명력을 발견하는 순간, 망각으로부터 솟구쳐서 새로이 선사되는 시간의 소중한 선물을 얻게 된다.

 

...그는 1 획의 정수를 추출해 삼차원 공간에 펼쳐 보였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위로 유성 잉크를 품은 굵은 붓이 지나간 자리에 긴박하고 치열한 순간의 흔적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 〈1 초 수묵〉에서 한지와 먹은 사용하지 않으나 호흡으로 분출되는 신체와 정신의 합일을 통해 수묵화의 새로운 전통을 모색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번 전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속히 유행이 변하고 상업주의가 범람한 오늘날 미술시장의 흐름을 역류하고 있다. '충격 가치'가 범람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적 가치, 관조와 성찰의 잔잔한 울림을 전달한다. 수묵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며 실험과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작가는 21세기 수묵화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원천에 대한 물음은 시간의 프리즘을 통해 확신, 안정, 지혜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화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박소영/ 미술평론, '지금'과 '1 초'의 미학(Art in culture 11월호/ 2013년)에서 발췌

 

 

 

“One second,” from instant to eternity

 

In Lim Hyun-Lak’s One-second Ink Wash Painting, one second is a special weave of space and time in which instant and eternity join. He looks for the source of creation. One second stands for the pause of time, that is to say an expansion of an instant just before pouring out the energy of life and the nature of ink through concentration and tension. Time turns to a moment only the artist can capture. It is like an eternity that cannot be split and extended.

 

One-second Ink Wash Painting began by implanting long, thin, transparent strips of 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 on which he dashed off strokes of brush unintentionally at his solo show held in Daegu last year. Lim created “ink life forms” swaying in the wind and reacting minutely to a ray of light. They look like they are soaring up from the floor, suspended from the ceiling. This work was an attempt to embody the swaying of wild plants he demonstrated in his previous art show. It is said that he experienced a thrilling moment, touched by life forms when he discovered unknown plants growing from the cracks of a cement floor in a desolate city. It was the moment he sang the song of life after feeling affection for all things in heaven and earth. He fully displayed the spirit of one stroke in the series Trees Stand with which he drew the attention of the art scene. This series, produced after getting over colorectal cancer he suffered at 40 in 2000, is especially meaningful in his life. Pressed for time with a hectic social life, he forgot this invaluable experience but he recovered it as the moment he discovered the life force of wild plants.

 

He unfolds one stroke in three-dimensional space, eliciting its essence. The trace of pressing, urgent moments is disclosed with thick brush strokes of oil-based ink on transparent strips of PET. We can appreciate when he says “I do not use hanji or traditional Korean paper and ink in One-second Ink Wash Painting but explore the new tradition of ink wash painting through the unity of body and spirit.”

 

This exhibition flows against the stream of the art market today where the fashion changes by the minute and commercialism is rampant. It brings us the underlying value of life and the serene resonance of contemplation and introspection in the world where “shocking value” prevails. Lim provides a blueprint for 21st century ink wash painting without losing his experimental and defiant spirit, newly interpreting the tradition of ink wash painting. His question about the origin of life may have the mysterious force to purify our souls, also bringing us confidence, stability, and wisdom through the prism of time.

 

Excerpts from Aesthetic of “Now” and “One Second” by Park So-young, Art Critic (Art in Culture November 2013)

 

 

심상용(미술평론가, 동덕여대 교수)/ 전시리뷰, 월간미술 1월호, 2003년

 

엄격한 의미에서 임현락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일반적으로 개입하는 인지와 표현의 과정, 대상을 포착하고, 이해하고, 그 이해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자기화 등, 일체의 방식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상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나무와 대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상을 주체와의 표현적 관계로 끌어들이는 ‘대상화’와는 다르다. 즉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고 최종적으로 이름을 부여하는 사후의 과정은 거기에 없다.

 

임현락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한다. 무엇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그가 이번에 실현하는 것은 나무이며, 그것들은 경험하고 호흡함으로써 실현된다. 여기에는 주체와 객체의 실제적이면서도 관념적인 혼연일체가 있다. 나무는 호흡의 한 단위 안에서, 즉각적으로 그리고 언어적 이성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무와 임현락 사이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나무의 신체와 작가의 신체는 미묘하게 교환된다. 나무에는 작가의 호흡과 호흡의 정지가 반영된다. 하나의 정지 동안 가능한 이동과 중단, 곧은 진전과 선회의 마디에 얽힌 힘의 실행들이 접목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다른 종류의 질서 안에 놓이게 된다. 그 질서는 대상의 외관을 파악하는 시각주의자나 그 본질을 파악한다는 관념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기서 나무는 대상이 아니고, 임현락도 단지 행위자가 아니다.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는 결별만큼 소통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의 시간 안에서 뒤섞이고 하나의 호흡 안에서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실현되는 것은 표현이나 묘사, 사유와도 다른 것이다.

 

얇고 경미하게 불투명한 실크 위에 이렇게 실현된 나무는 천장으로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길게 늘어져, 지나는 사람들의 바람결에도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된다. 점점 멀어지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획들의 중첩은 깊고 수용적이며 포근한 그러데이션, 일종의 시선의 쿠션 같은 것을 선물한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더 이상 자신들의 출발인 나무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들이 부드럽게 구불거리는 길 같기도 하고, 승천하는 힘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들 사이에 서 있을 때, 혹 그 밑이나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 그것들이 자신들의 기분 좋게 모호한 정체를 흔들어대며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조금 쉽게 시(詩)로 난 길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무게가 덜한 것들과의 교환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Shim Sang-yong,  Professor at Dongduk University and art critic

 

In a strict sense, Lim Hyun-lak and his works betray the conventional idea of what we call painting. The process of recognition and expression generally found in most paintings such as identifying the object, understanding it and then projecting oneself onto it, are nowhere to be found in Lim's works. Of course Lim paints objects.   Trees and the Earth are recurring themes in his works.  However, unlike other artists, Lim refrains from endowing them with special meaning or to connect himself to the objects.  In other words, he stands apart from his own drawings.

 

Instead of explicitly expressing what he thinks, Lim allows the paintings to realize on their own. Then what and how does Lim realize this time? In his latest exhibition, Lim endeavors to realize trees and he does so by experiencing and interacting with his objects. In his paintings, Lim and his objects mingle to become one both ideally and conceptually. In a single breath, Lim instantaneously realizes a tree physically and not through some linguistic reasoning. Lim and the trees are inseparable in his paintings. The two interact with each other in a very subtle way. If you look at the trees, you can feel the artist's breath, where he took it and where he stopped. You can even trace each and every brush stroke and feel the energy the artist put into it.

Lim's paintings conform to a certain order. This order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ose upheld by perspectivists or idealists who seek to understand the appearance or essence of an object. In Lim's paintings, trees are not merely objects nor is Lim a mere agent. Between these living and non-living objects exists interaction as strong as the distance between the two. The two mingle and perceive each other within a single time frame and breath. Thus the outcome realized through this process differs from a mere expression or depiction of a concept.

 

Trees painted on layers of long opaque silk hanging from the ceiling to the ground sway from the slightest whiff from passersby. Overlapping brush strokes with no end in sight decorating the hall create a halcyon atmosphere through its deep, receptive and soft gradations. The painting becomes more than simply trees. It can be a winding road for some and a trace of ascending energy for others. What is significant about the painting, however, is the fact that it touches our subconscious, creating a stir within us as we stand or pass by the painting. Perhaps we can look beyond what is presented before us at imaginary roads relatively easily as we interact with the painting that is lighter than the weight we have to endure in the actual world.

 

 


 

한지의 멋과 정신 -운필의 자동기술

 

동양화가 갖는 특성 가운데 일필휘지는 독특한 방법으로 간주된다. 붓이 지니는 자동성, 종이와 먹이 자아내는 독특한 선염의 깊이는 동양화가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 만큼 단숨에 이루어지는 일회성과 집중된 정신의 응결이 동양화가 지니는 매력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최근 수묵화를 추구하는 작가들 가운데 운필의 자동기술과 선염적 표현의 깊이를 체득해 가고 있는 작업이 늘어나고 있어 관심을 끌게 한다. 온갖 실험이 난무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기법을 실험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임현락의 작업은 형식적 실험이 두드러진다. 액자라는 관념에 가두지 않고 나무라는 생명체를 자라나는 형상에 맞춘 화폭의 설정이 인상적이다 천장에 매달린 현수막 같은 긴 천에 그려진 나무들 사이로 빠져가다 보면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양화의 화론에는 나무를 그리되 단순한 외형을 따르지 말고 자라나는 나무를 그리라 했다. 임현락의 작업 역시 생성하는 생명체에 충실하려고 하고 있다.

 

오광수(미술평론가,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 전시포커스, Art in culture 1월호, 2003년

 

 

Automatic brush strokes and profound gradation

 

The work of art created by the single fell swoop of a brush stroke is one of many unique characteristics of Oriental paintings. In other words, the automaticity of brush strokes and profound gradation created using paper and ink can only be found in Oriental paintings. From such a perspectiv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instant creation of a painting from the eruption of brief but acute concentration makes Oriental paintings even more attractive.

In recent years, a growing number of Korean ink painting artists have come to understand the automaticity of brush strokes and profound gradation. Their efforts to experiment with this traditional artistic method using diverse methodological approaches bear much significance.

Lim Hyun-lak does not hesitate to experiment with his work. What is especially impressive about Lim's latest exhibition is the setting. Instead of confining his drawings- in this case, trees- within a frame, Lim paints them on long cloths hanging from the ceiling, depicting trees as if they were live and growing. Passing by the paintings, it is easy to feel as if one were taking a walk in the woods. In Oriental art, artists are taught not to draw the outer surface, but to delve deeper into the very being of the tree. And Lim does a superb job of bringing out the inner meaning.

 

Oh Gwang-soo /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nd art cri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