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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 tree & Wind & Reed, Installation view, Gallery Artside, 2001


 

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Gallery Artside, Seoul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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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135x100cm,  Ink on paper Hanji,  2001

 

 

 

 

 

솔․ 바람․ 갈대, 그 명징한 생명력

                                       

                              

-윤재갑(미술평론/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두번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임현락의 화면은 먹과 선의 자율적 움직임과 여백의 적극적 개입을 보여준다. 재현적이지 않고 지시적이지 않은 먹․선은 마치 화면이라는 지지대를 벗어 난 듯 허공에서 분방하게 흩어져 버린다. 특히 이번의 세 번째 개인전에서 갈대를 붓 삼아 그린 소나무 연작은 그가 氣와 여백이라는 오랜 회화적 요소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임현락에 있어 氣와 여백은 동일한 것이다. 그가 쓰는 眞形이라는 말은 捨形取常의 常과 같은 의미이다. 가시적인 形을 버리고 사물의 眞形, 즉 사물의 비가시적 氣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백과 氣와 眞形은 비가시성에서 동일하다. 이 점에서 임현락의 작업은 우리에게 동양 회화가 風水地理와의 긴밀한 연관에서 출발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風水地理에서 바람(風)은 山과 水를 에워싼 보이지 않는 호흡이자 생명이다. 이러던 것이 隋․唐대를 거치며 바람이나 호흡이라는 자연스러운 표현 대신 氣나 寫意, 傳神이라는 관념적인 단어로 바뀌어 간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회화의 자립 과정은 바로 風水에서 山水로의 변천 과정이자, 우리의 믿음과는 반대로 자연의 철학화, 관념화와 동일하다. 임현락은 최근작에서 바람(風)을 주요소로 하여 이러한 회화의 시원성을 탐색하고 風, 山, 水의 조화를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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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35x100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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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 tree & Wind & Reed, Installation view, Gallery Artsid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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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72x138cm, Ink on paper Hanji, 2001

이러한 가시성(山, 水, 形)과 비가시성(風, 氣, 常, 여백)의 조화, 즉 山, 水에 어떻게 비가시적인 氣를 불어넣어 생동케 할 것인가는 풍수와 동양회화의 공통된 이상이자 임현락이 최근작에서 고민하는 경계이다. 바람은 분명 존재하나 보이지 않고, 호흡은 결코 보이지 않으나 사물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이처럼 임현락의 화면에 흐르는 여백이나 바람은 풍수에서의 風(바람)과 동일하며, 화면에 그려진 소나무가 살아있도록 만드는 생명이자 숨쉼이다. 이러한 호흡을 통해 작가는 사물과 교감하고 그것을 화면에 옮긴다. 그것은 동양 회화의 자기 전개 과정에서 지나치게 관념화된 정형 산수의 틀(氣나 寫意, 傳神, 먹의 유희, 운필의 묘와 갖가지 준법과 방작)을 들어내고 사물과 생명의 본질을 자기화 했기에 가능한 성취이다. 그러기에 그의 소나무는 살아서 명징한 생명의 숨소리를 서걱서걱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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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138x172cm, Ink on paper Hanji, 2001

정형화되고 관습적인 먹의 유희, 운필의 묘와 갖가지 준법에서 한 발 벗어났을 때 일획과 만 번의 붓질 사이의 대비는 또 다른 의미를 띤다. 아니 임현락은 모필이 아닌 갈대 묶음을 잡으면서부터 이러한 대립적 간극에서 벗어나있다. 모필에 비해 수분 삼투가 훨씬 약한 갈대 다발은 아예 먹의 유희나 운필의 묘를 허용치 않고 전통적인 준법을 펼칠 수 없게 만든다. 아니, 종이에 갈대를 대기도 전에 먹물이 후두둑 흩어져 내릴 지경이다. 그러니 자연히 재료의 물성 자체를 관념적으로 우러르지도 않고 먹과 운필의 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모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갈대를 사용함으로써 운동 반경은 배가 되고 화면의 역동과 긴장은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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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72x138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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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72x138cm, Ink on paper Hanji, 2001

단순히 붓 대신 갈대를 잡거나, 먹의 울림이나 유희를 지극히 제한한 것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생선 꼬리나 대걸레를 사용한 작가도 있고, 이물질을 첨가하여 전통적인 먹 맛을 확장하거나 제어한 작가도 있고, 유채처럼 균등하게 사용하여 색면 추상을 시도한 작가도 있다. 그의 작업이 지금에 와서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동양 회화의 시원에 거슬러 도달하면서도 새로운 방법적, 재료적인 모색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의 물성 자체에 대한 관념적 과신을 경계하면서도 오히려 그 확장을 꾀하고, 파편적인 옥시덴탈리즘을 거부하면서도 동양 회화의 장점을 튼튼히 쌓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하고 다층위적인 실험의 출발점이 최근 그의 작업이다. 아울러 위기와 침체는 미술시장의 위기요 침체이지 회화 자체의 그것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근래에 이룩한 기술의 발달은 창작과 수용 모두에서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업이 이러한 가능성의 한 가운데에 서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닌가 한다.

Fine tree & Wind & Reed, Installation view, Gallery Artsid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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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per 90x60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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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90x60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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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90x60cm, Ink on paper Hanji, 2001

찰나의 드로잉

 

최근 몇 년간 임현락의 집요한 사유의 대상은 자연이다. 그는 한지 위에 특수하게 고안된 갈대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소나무나 숲뿐만 아니라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바람마저 형상화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바람을 볼 수는 없다. 바람은 소나무나 숲을 매개로 하여 쌀쌀한 서정의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서 우리가 맡을 수 있는 것은 군더더기가 제거된 사물의 본질 그 자체다. 가령, 소나무는 순간적으로 휘두른 붓에 의해 극소의 ‘소나무다운’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다. 추사의 소위 ‘서권기 문자향’ 이 뜻하는 수준 높은 미감의 획득이 임현락이 지향하는 미적 경지가 아닌가 한다. 그의 그림에서 형사보다는 사의가 중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임현락의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시점이다. 1997~98년 사이에 제작된 <숲에 눞다>는 말 그대로 숲에서 누워 바라본 나무와 하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숲에 누워 올려다 본 하늘과 나무의 단편들은 종이 위에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늘을 암시하는 푸른 색조와 갈필로 표현된 나무들은 서양식 용어로 표현하자면 ‘올 오버(all-over)' 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국작가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이런 식으로 파악하면 온당치 못한 일일 것이나, 임현락에게 있어서 동서문화의 ‘크로스 오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가 최근의 개인전에서 발표한 <솔․바람>연작은 전면에서 바라본 소나무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근작들은 예전의 것들에 비해 보다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푸른색의 사용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필선은 더욱 대담하다. 시점은 정면에서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근작에서 대상의 포치, 즉 구도의 문제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구도와 관련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은 적절한 여백의 활용에 관한 문제다. 한국화에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여백은 말 그대로 살아 숨쉬는 것으로서 특히 임현락류의 작업에서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와 함께 운필․여백․먹의 농담․선염․갈필 등 문기(文氣)의 표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 작품에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최소한의 형사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추상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문기와 표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소나무를 소재로 한 그의 근작들은 회화의 기본이 점․선․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의 작품은 선묘적이다. 뿌리기․흘리기․휘갈기기와 같은 기법에 의한 드로잉이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즉발적이며 찰나적인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것의 총화다.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수준 높은 교양을 본다.

그의 그림은 그러한 감각의 외화다. 그것은 지극히 엘리트적이다.

 

-윤진섭(미술평론) / 전시리뷰, Art in culture 6월호,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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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38x172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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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138x172cm, Ink on paper Hanji, 2001

 

임현락이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전의 제목은<솔․바람․갈대>다. 한지 위에 먹과 엷은 채색으로 설치한 그의 그림들은 솔로부터 그 가시적 형태를 취하고 신체의 과격하고 빠른 운동으로부터 바람을, 엉성한 갈대 잎들로부터 우연히 흩어진 듯한 거친 자국을 얻어 내고 있다. 화면의 외형만 놓고 볼 때, 그의 그림은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으로 대변되는 1970년대 이후 한국화의 한 가닥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재료에 대한 신비화와 운필의 효력에 대한 신념을 골간으로 서구 모더니즘의 성취를 흡수하며 자기 영역을 조심스럽게 확장해 나가는 수묵 한국화의 지평 안에서 그의 작업은 한결 숙련된 손맛과 수묵조형을 향한 일관된 탐구자세를 보여준다. 그의 그림에서 특히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속도와 여백의 조화다. 빠르게 움직이는 신체의 궤적으로 실(實) 공간을 채우고, 하얗게 남겨진 여백의 노래가 먹과 갈대의 날카로운 운동을 부드럽게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제목을 가진 유사한 형태의 그림들을 통해 그가 집요하게 표현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먹의 유희나 여백의 조형을 넘어 솔과 바람과 갈대가 표상하는 청산(靑山)으로의 회귀, 혹은 본연으로의 회복이 아닐까. 솔은 청청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조금 까

다롭고, 그래서 더 귀하게 여겨지는 그런 식물이다. 이 솔과 솔이 사는 지역에서 부는 청정한 바람, 그리고 사라지고 있는 늪지 식물 갈대는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

의 한 귀퉁이를 연상시켜 준다. 더 나아가, 작가와 작품의 격(格)을 동일시하는 문인화의 오랜 정신적 태도를 고려하면서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노라면, 최근에 그가 겪었던 육체적․정신적 시련과 관련하여 그의 그림들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차원의 울림을 문득 마주하게 된다.

고통을 견뎌낸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초탈과 관조의 정신이 넉넉한 여백과 엉성한 갈대 붓의 자유로운 운필을 통해 어렴풋이 전달된다. 그러고 보면 정말 그의 그림에선 솔과 갈대 사이를 오가는 한 줄기 바람이 스쳐 간다. 힘겹게 오른 언덕 위에서 땀에 젖은 이마를 식혀 주던 바람과 매우 유사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마음 속 깨달음의 바람 말이다.

 

-김혜경 (전 아르코미술관 수석큐레이터) / 전시리뷰, 월간미술 6월호,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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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135x100cm,  Ink on paper Hanji,  2001

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72x41cm,    Ink on paper Hanji,    2001

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72x41cm,    Ink on paper Hanji,    2001

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72x41cm,    Ink on paper Hanji,    2001

솔, 바람, 갈대 Fine tree & Wind & Reed,

72x41cm,    Ink on paper Hanj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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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 tree & Wind & Reed, Installation view, Gallery Artsid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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