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 HYUN LAK
Solo Exhibition view, Arko Art Center, 1998
‘숲에 눕다’ / ‘Lying in the forest’
Arko Art Center, Seoul (1998)
발산 Energetic, 42x7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숲에서 In the forest, 60x90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조화로운 여운
임현락은 회화에 있어서의 발견과 성취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실험적인 단면과 아울러 동양이라 부르는 지정학적인 환경에서 동양화라 부르는 회화의 전통이 어떠한 방향을 가져야하는가라는 지향성의 문제를 잘 이해하는 작가의 한사람이다. 서로 다른 의미와 방향을 고집해왔던 동과 서의 적대적 역학을 융합하여 자기화하기 위한 고뇌와 방황의 세월에서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결코 우호적이라 할 수 없는 동과 서의 예술대를 관통하는 공감의 영역을 동양의 매체와 정신에서 발견하여 그것을 다시 서구미술의 흐름에 대입하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동양화라 부르는 그림은 그만큼 더 어려운 작업이 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동과서의 적대관계가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화면의 높이와 질료의 깊이에 대한 시각차에서 온다.
숲에 눕다 Lying in the forest, 129x16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1.
서양의 그림에서 보면 시대에 따라 화면의 위치가 달랐다. 이를테면 눈높이와 가칙반경이 다른 것이다. 동굴시대의 화면은 인간의 주거공간을 둘러싼 상하좌우의 모든 공백이었다. 자연과의 행복한 친화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리스는 제신의 시대였다. 인간보다 위대하기 때문에 인간보다 크게 그려지고 만들어진 신들은 인간이 같은 바닥을 딛고서도 우러러 보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중세에는 하늘 끝으로 향하는 첨탑과 하늘을 형상한 궁륭에 신의 그림자를 그렸다. 그림이 높아질수록 인간은 왜소해졌다. 그것을 다시 인간의 눈높이로 끌어내린 것이 르네상스라 했다. 사람이 사는 집의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자연, 그것이 르네상스가 바라본 신의 창조물이었다. 이렇게 인간의 잣대로 본 서구의 미학은 물리적이고 현상적이었다. 그림이 지향하는 바, 경배하는 바의 대상의 위치에 따라 화면도 물리적인 위치와 현상적인 방향이 결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화면을 바닥에 깔아놓고 물감을 흩뿌리고 다녔던 잭슨폴록(Jackson Pollock)이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물감이 스며들게 만들었던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는 거대한 변혁을 성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화면의 높이와 깊이를 바꾸는 이른바 20세기 미술의 변혁을 이끈 견인차는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이른바 “20세기 화가의 제1신조(1st principle of 20th century art)”였다. 미술이란 식별할 수 있는 요소거나 정서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단서라기보다는 물감덩어리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참 별 것도 신조가 되고 발견이 되었던 것이 20세기, 그리고 서구의 미술이었다.
숲에 눕다 Lying in the forest, 173x276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그러나 그것은 인간척이 만물의 중심이 되었던 서구의 관점이었고 미학이었다. 사실 동양에서 화면의 위치와 방향은 서양에 비하여 대단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서화는 바닥에 깔아놓고 쓰고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5천년의 마지막 1세기동안의 동양화가 화판에 고정되어 이젤에 올라앉을 때도 그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혁에 대하여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화면을 물들이는 이른바 선염이나 발묵이 미학 미술사의 방향을 바꾸지도 못했다. 그림의 물리적 성상이 유발하는 시지각을 바탕으로 정형화되었던 서구적 눈높이는 동양의 미술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회화에서 폴록이나 루이스의 발견과 성취를 동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낼까?
하늘, 구름, 바람, 갈대 Sky, Cloud, wind, Reed, 173x276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7
겨울나무 Winter Trees, 129x16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7
임현락은 동양정신의 뼈대가 되는 기운의 생동을 잘 이해한다. 그것은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게 놔두는 것이라는 것도 잘 이해한다. 놀게 두어라. 그러나 결국 내 손아귀에서 놀 터이니, 그리고 내가 눈을 그려주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승천을 할 것이냐고 생각한다. 결국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용의 눈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용을 손아귀에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를 임현락의 그림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현락의 그림은 자유롭다. 일견 화론과 화업에서도 자유롭다. 모든 것이 임현락의 화면에서는 분수를 지킨다. 제 자리를 지키고 제 할 일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서로 부대끼지 않고 유유자적하다. 그려진 필선, 뿌려진 묵적, 배어든 묵흔, 그리고 순지(純紙)의 뒷면에서 파고드는 배채(背彩)가 만드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미학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지키고 제 할 일을 한다. 그것은 분명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회화관은 아니다. 잭슨폴록이 카우보이처럼 물감에 올라탄다 했을 때 물감은 날뛰는 말처럼 저항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러나 임현락이 과포화상태의 순지 위에 물감과 먹물을 시색(柹色)할 때 거기에는 물감을 올라탄다는 물리적인 정복의 의미가 없다. 물감에게 미처 저항이라는 관념을 부여하기도 전에 임현락의 거친 붓질은 끝난다.
숲에 눕다 Lying in the forest, 276x346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Exhibition view, Arko Art Center, 1998
임현락은 이번 전시에서 장지 대신 순지를 쓴다. 강한 물성이 강한 회화적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상식에의 반역이다. 장지보다 얇고 화선지보다 질긴 순지위에서 갈대의 붓과 물과 안료가 보다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위해 도입한 것이 갈대이다. 익숙한 붓이 패턴화하는 것이 못 마땅하기 때문이다. 줄기를 깎아서 펜처럼 쓰는 서구적인 필기구가 아니라 가을 하늘아래 하늘거리는 갈대가 수면 위에서 물과 희롱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소도구로서 갈대가 쓰인다. 스치고 지나간다. 무심한 스침에도 물은 그 스침의 흔적을 머금지 않는다. 농담이 배제된다. 농담이라는 고정관념조차 잠잠해진다. 그렇게 무심히 물감을 젖은 순지 위에 스치기 위해 갈대가 붓 대신 쓰인다. 남은 것은 주어진 공간에서 제한된 우연히 허용되는 놀이터에서 물감이 노닐 수 있는 작은 자유의 시간이다. 물성은 각기 제 나름대로의 주장력 대신 서로의 주장을 수용하되 훼손하지 않는 민주적인 공간 속에서 활보한다. 뵈링거(Worringer)가 주장했던 ‘행복한 친화관계’가 대상과 물성이 주장력을 극대화하지 않는 공간에서 오히려 극대화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화면이기에 그것은 첫 번째 개인전의 여백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 여운이 그것이다.
바람 Wind, 72x4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갈바람 A West Wind,
72x4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2.
임현락의 두 번째 개인전은 첫 번째 개인전의 ‘여백’을 이어받되 그 여백에 ‘여운’을 심는 작업으로 바뀌고 있다. 여백이란 형상과 표상이 만드는 알아볼 수 있는 화면의 배경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운이란 소리와 움직임의 뒤에 남은 운치가 있다는 뜻이다. 창세기의 표현처럼 ‘보기에 좋았더라’는 경개이다. 즉 임현락의 여백과 여운은 형상세계와 가청영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의 ‘여백’은 분명한 형상을 배경이었다. 형상의 포치(布置)가 보여주는 강한 주장력은 임현락이 지향하는바 여백의 세계를 압도하고 있었다. 주제가 인물이면 인물, 나무면 나무, 조형의지면 조형의지라고 보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었다. 즉 사의(寫意)가 움직임에 있으면 사람들은 아하, 인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구나,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유기적 도형이 있으면 나무 아래 누어 바라본 하늘이구나, 풍경의 가운데를 토막내어 이질적인 기하도형을 넣으면 풍경을 시지각이 아니라 조형요소로 환원하려는 의지를 지향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임현락의 조형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 임현락이 추구하는 것은 그 주제와 사의와 조형의지의 ‘여백’이 가지는 폭발적인 저력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형상의 뒤쪽에서 형상의 주장력에 압도당하는 듯이 보이는 그 여백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그것이 임현락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하일서정(夏日抒情) Feeling of Summerday, 139x352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부유 (浮游) Wafting, 141x376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그 여백의 세계는 임현락에게 무한한 가능태였다. 문자와 언어가 생겨 인간에게는 텔레파시와 초능력이 도태되었다는 일련의 주장들처럼 우리의 시지각이 형체를 형체로서 식별하면서부터 여백의 가능성이 도태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여백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임현락이 시도했던 것은 상식을 뒤집는 설채(設彩)로 나타난 바 있다. 주제가 되는 여백은 농묵과 농채로, 부제라 할 수 있는 형상은 담묵과 담채로 처리했다. 그래서 화면은 중후하면서도 경쾌해졌다, 상식이 거부당하는 통열함도 있었다. 그 화면이 두 번째 전시에서 여운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여운이란 엄밀히 말해서 어떤‘운(韻)’이 있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을 말한다. 동시적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이다. 그러나 먼저 만들어진 것과 나중에 남는 것은 대위법적인 연결고리를 가진다. 그것은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통합이 아니라 중도(中道)의 순환론적인 해체였다. 이를테면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세계이다. 형상이 운(韻)인가. 아니다. 형상은 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백이 운인가. 아니다. 여백은 운을 머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순환의 고리를 끊을 제3의 발견이 필요하다.
창(蒼)/ Blue, Thick, 162x260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본 시각이 여백에서 본 형상의 세계라면 두 번째 개인전에서 본 세계는 빙글빙글 돌고 있는 여백과 형상에서 회전이라는 개념을 화면에 옮겨놓았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쉬워 개념을 형상화하는 것이지 화면에서 회전하는 형상과 여백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과 눈의 영역이 아니다. 영혼의 호흡이라고 과장하여 말하면 적어도 느낌은 전달될 것이다. 그래서 제3의 발견에 의해 임현락의 화면이 보다 정신을 닮음 즉 신사(神寫)에 가까워졌다. 신사란 정신을 화면에 옮겨놓은 방법론이다. 문자 그대로 신을 전함(傳神)이요. 통신(通神)이다. 정신을 전하는 것이요,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서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임현락이 내세웠던 것이 사의(寫意)였다. 형상을 해체함으로써 여백의 적극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면은 질료와 형상의 각축장이 되었다, 언뜻 보아 다이나믹하다거나, 혼란스럽다거나 둘 중의 둘이라고 지적할 수 있었던 화면은 그런 처절한 투쟁의 결과였었다.
그것이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서 여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긴 여운의 미학적 정착을 위해 장지가 순지로 바뀐 만큼 임현락의 변화는 크다. 몇 개의 작품을 이어 붙일 때도 반드시 화면논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의 화면과 잇댄 화면의 반경이 넓어졌다. 배채에서 배어 나오는 제한적인 우연에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 배접에 가서야 그 효과 드러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면의 앞과 뒤라는 공간, 시색과 배접까지의 시간이 깊어졌다.
바람이 일다 The wind is rising,
272x171cm, Ink & color on paper Hanji, 1998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바람이 성긴 대숲을 지나도 바람이 지나면 대숲은 소리를 머금지 않고, 기러기가 연못 위를 날아가도 연못은 그림자를 간직하지 않는 법’ 이라고 채근담에서 말했던가. 임현락이 십년간 한결같이 카메라를 들이댔던 나무와 그 한결같은 앵글, 그러면서도 두 번씩, 세 번씩 같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 깨달을 만큼 그의 소재에 대한 집착이 깊어도 나무는 셔터소리를 머금지 않고, 나무라는 소재를 화면에 옮기되 바닥에 깐 순지에 배채로 스며들어 여운이 만들어지는 시간에 비해 순식간에 휘저어 형상이 해체되어도 순지는 그 진형(眞形)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화면은 스스로 완성의 가능성을 임현락에게 귀띔 해준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량과 자세에서 가능한 경개일 것이다.
그 경개에서 만들어지는 세계이기에 한결 유장하고 탄탄하게 느껴지는 것이 두 번째 전시의 작품들이다. 거기에는 이미 습필과 갈필에 무관히 화면에 깊숙이 파고드는 기운의 진동이 있다. 기운이라는 군형(君形)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화면의 정적을 뒤흔들면, 그 기세를 따라 흩뿌려지는 묵흔이 신형(臣形)을 이룬다. 이미 필의(筆意)조차 포기한 갈대묶음의 바람에 휘날리는 미묘한 공기의 진동이 좌형(佐形)으로 이끌려 가면 순지의 깊고 깊은 저쪽에 있는 하늘이 이쪽으로 무한의 시간을 업고 편이(便移)하여 사형(使形)으로 유인된다. 이렇게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총체적 조화와 그 여백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이름이 임현락의 ‘여운’이다.
김영재(金永材) / 미술평론
Exhibition view, Arko Art Center, 1998
© 2022 by Lim Hyun Lak